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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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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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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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은 두 나라를 합산하면 최대 30만 명까지 추정되는 전사자를 냈고, 전상자는 그 몇 배에 이른다. 더욱이 민간인 희생자는 제노사이드라 말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아직 정확한 통계가 없다. 다만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해 최대 10만 명을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1 여기에 용병으로 파병된 북한군도 이미 수천 명의 전사자를 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2023년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어린이 강제추방에 개입한 전쟁범죄 혐의로 자신에게 발부한 체포영장을 조롱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곤 했다. 핵보유국과 핵을 포기한 바 있는 비핵 약소국가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이 전쟁은 동서 진영의 긴장이라는 과거 냉전의 역사를 소환하는 가운데, 전쟁사의 새 국면을 열고 있다.
이 전쟁의 멀고 가까운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필자는 다음 몇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는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한 러시아 푸틴 체제의 내면적 속성이다. 푸틴 정권은 그 성립부터 주변 약소 사회에 대한 무자비한 전쟁에 기대어 있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푸틴을 총리로 발탁한 것은 1999년 8월이었다. 당시 옐친은 혈관우회수술을 받는 등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러시아 정치는 옐친의 그늘에서 재계 거물로 성장한 인물들에 장악되어 있었다. 부패한 이 과두정 세력의 숙제는 옐친 이후에도 기득권을 담보할 차기 대권이었다. 별일이 없다면 후임자는 과거 해외정보기관 수장과 총리를 역임하여 관료집단과 공산당의 지지를 받고 있던 실용적 보수주의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일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부패 척결을 희구하는 민의를 따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프리마코프의 집권을 막기 위한 엘친 주변 세력의 첫 작업은 총리가 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세르게이 스테파신을 해임하고 당시 46세의 푸틴을 총리로 앉힌 것이었다. 그는 KGB의 후신으로 러시아의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FSB 국장을 역임했다. 그 전 몇 개월간 푸틴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해당하는 안보회의 서기를 맡고 있던, 이렇다할 특색 없는 관료였다. 그러나 FSB 국장을 역임한 푸틴이 총리가 된 직후인 그 해 9월 일련의 강력한 테러 사건들이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FSB가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하지만 푸틴은 체첸 테러리스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체첸을 상대로 무자비한 전쟁을 벌였다. 러시아 국민은 환호했고 대선에서 푸틴의 인기는 프리마코프를 능가했다. 대통령 푸틴은 그렇게 탄생했다.2
둘째는 탈냉전 후 약 20년간 지속했던 미국 단극체제의 관성이었다. 엽기적인 탄생 비화를 담은 푸틴의 러시아가 장차 제국의 부활을 꿈꾸기에 이른다면, 그 은밀한 기획을 정당화할 국제적 조건을 재촉한 것은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함께 21세기 벽두에 선택한 군비경쟁 방향과 지정학적 전략이었다. 먼저 부시행정부는 2001년 12월 미사일방어체제를 필두로 한 21세기형 군비경쟁을 선도할 목적으로 1972년 소련과 맺었던 ‘탄도미사일방어제한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 선언했다. ‘2002년 미국국가안보전략’ 문건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했던 데서 드러나듯 당시 미국이 염두한 미래 군비경쟁 상대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NATO를 동유럽으로 확장하며 러시아를 압박하는 동시에 폴란드를 포함한 그 영역을 미사일방어체제로 덮으려 했다. 러시아는 ‘전략적 불균형’을 우려하며 항의했지만 미국과 유럽은 대체로 이를 무시했다.
셋째, 러시아가 그처럼 대서양 동맹체제의 확장과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저항하고자 해도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이 서방의 대대적인 경제제재로 국제적 고립에 빠질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일 수 없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필자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로 규정하는 질서 안에서 그 기축관계인 미일동맹과 중국대륙의 긴장이 본격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속수무책이던 러시아는 이제 G2의 국력을 갖기에 이른 중국을 의지하여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NATO와 EU의 동진에 저항하고 나섰다. 그 첫 신호탄이 2014년 크리미아 합병이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20세기 중엽 세 개의 전쟁을 거치며 성립했다. 미국에 의한 일본 단독점령이라는 태평양전쟁 종결 방식은 전후 미일동맹의 기반을 구성한다. 중국 내전의 결과는 지정학적 정체성이 우에서 좌로 전환된 신중국을 낳았다. 이들 사이의 3차원적 긴장(지정학적 긴장,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긴장, 역사심리적 긴장)은 한국전쟁에서 미중 격돌에 의해 고착화하면서 동아시아 대분단의 기축을 구성한다. 이와 동시에 한반도, 타이완해협, 그리고 인도차이나에서 형성된 3개의 소분단체제들이 대분단 기축의 3차원적 긴장과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이 성립하는데, 이것을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로 정의한다.3
냉전기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미소 냉전을 배경으로 하고 그것에 의지하면서 구성되고 전개되었다. 이와 달리 2020년대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본격화한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신냉전 현상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 깊어지고 있는 긴장을 배경으로 하고 그것에 의존하여 전개되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0년 시점에서 중국 GDP는 러시아연방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021년 중국의 GDP는 러시아의 10배가 넘었다. 상하이협력기구(SCO)의 구성원들인 중국과 인도와의 국제경제적 연대 없이는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제재를 당연히 초래할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히 실행할 수는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역에 편입되는 것을 중국이 원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NATO의 최전방 기지가 되는 것은 중국 역시 경계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이 푸틴이 우크라이나침공을 20일 앞두고 요청한 ‘무제한적 동반자관계’ 선언에 응한 일차적인 이유일 것이다.
넷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국제정치적 맥락은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의 폭력적 대결과 함께 들여다볼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진영 간 대결의 양상을 띠면서도, 기존의 어떤 공식적 동맹체제에도 속하지 않은 소외된 사회를 대상으로 한 제국적 폭력이다. 그런 점에서 패권자 미국을 등에 업고 지난 1년 넘게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회를 향해 쏟아내고 있는 이스라엘의 폭력과 닮은꼴이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보유한 강대국을 상대하고 있듯이, 이스라엘 또한 자신이 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을 등에 업고 있다. 이런 상황의 특징은 제노사이드라고 할밖에 없는 대량 민간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를 저지하거나 응징할만한 국제적 개입의 의지가 지극히 빈약하다는 것이다. 다만 두 사례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희생자에 속하되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사회는 지중해를 포함한 근동지역에 수백년 똬리를 틀어온 서방 제국주의 질서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이들을 응원하는 세력은 서방이 불량국가 취급하는 이란 정도에 불과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살상과 파괴는 또 한 가지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지탱하는 러시아군 동원 방식은 푸틴 치하 러시아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런던 킹스칼리지 러시아연구소 소장의 지적처럼, “러시아의 전쟁 사망자는 교육, 재정, 정치적 자원 등에서 열악한 조건에 있는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이 전쟁에 대한 논의는 사적인 대화에서만 가능하며, 항의는 물론이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단조차 없는 사회집단이 가장 크게 희생당하고 있다.” 4 이러한 전쟁 동원 양상은 푸틴 정권의 탄생 배경을 새삼 상기시킨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적 폭력을 지원하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비판할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 미국의 대학들은 아이비리그를 필두로 바이든 행정부때부터 팔레스타인과 연대를 표현하는 목소리를 억압해왔다. 트럼프행정부에 들어서서 그 양상은 파시즘을 닮아간다. 이스라엘의 극우정권과 미국 정치사회의 권위주의 흐름은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침없는 폭력을 지탱하는 간과할 수 없는 배경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다섯째로 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1965년 미국의 본격적인 군사개입으로 시작해 약 7년에 걸쳐 전개된 베트남전쟁과 닮은 점들을 주목한다. 러시아는 NATO의 팽창주의를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 내부의 일부 친러 세력과의 연대를 명분으로 침공했다. 미국도 유라시아대륙 공산세력의 팽창 도미노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의 친미 세력과 연대해 개입했다. 이 때 베트남의 혁명적 민족주의는 유라시아 대륙연합과 연대해 미국에 저항했다. 러시아 침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 연대해 있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하는 힘에도 베트남처럼 반제 자주의 이념을 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전쟁을 시작한 제국주의 국가와 다른 편에 속한 진영은 베트남에서처럼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꺼리고 있다. 베트남에 대해 소련도 중국도 무기와 고문단을 보내 지원하되 군대를 파견해 개입하지는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미국과 유럽은 막대한 군사원조를 하되 군대를 파견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전쟁은 공식적 동맹관계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양측의 배후에 있는 강대국들이 뛰어들어 국제전으로 비화한 사태였다. 한국전쟁처럼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베트남전쟁을 닮았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다른 또 하나의 점에서도 베트남전쟁과 비슷해지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군사개입과 동시에 한국의 파병을 유도했다. 러시아는 2024년부터 북한의 파병을 끌어냈다. 둘 다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서방 사이의 진영 간 대립의 중간에 낀 사회들에서 일어난 전쟁에 한반도가 연루되는 양상이다. 남한이 베트남전쟁에 군대를 파견하여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서 입지를 확인하고 경제적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처럼, 북한은 우크라이나 파병을 통해 국제적 고립을 해소하고 첨단 군사기술을 확보하며 실질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다져가는 계기로 삼고 있다.
끝으로 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한반도 핵문제와 미래 전쟁의 양상에 던지는 파장을 생각해본다. 이 전쟁은 약소국가의 생존이 핵무장 여부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북한에게 재확인해주었다. 2006년 한 작은 흙구덩이에서 끌려나와 사형에 처해진 사담 후세인의 운명에서 북한은 이미 그 교훈을 새긴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과 더불어 1994년 12월 5일 유엔 5개 상임이사국들의 안전보장을 약속받으면서 핵무기를 포기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그 때 왜 핵을 포기했는가를 자문하고 있다.5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북한은 강대국의 안전보장을 믿고 핵을 포기한 약소국가의 운명을 새삼 되새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푸틴의 행태로 인해 이 전쟁은 비핵국가에 대한 핵보유국의 핵위협 문턱을 더욱 낮추어놓았다.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유라시아 대륙연합이 지속되는 한 러시아와의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중국이 적극적으로 부정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북한이 유라시아 대륙연합의 최소한 소극적 긍정을 배경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실질적으로 획득하면, 한미일 삼각군사연합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는 더 깊어질 것이다. 한국 내 핵무장론 역시 강화될 것이다. 이를 의식한 미국은 한반도 주변에 대한 전략자산 배치와 운영을 강화할 것이다. 이로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긴장을 심화하는 기존의 추세는 더 강화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은 1991년 걸프전에서 선보인 것과 같은 정밀타격 무기들이 대거 활약하여 단기간에 약소국가들을 굴복시키고 점령하여 정권교체까지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러시아가 중국과의 연합을 배후로 확보한 상태에서 서방, 특히 미국과 진영 간 대립을 벌이는 전쟁이 되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 모두의 정밀타격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첨단무기 실험장이 되었다. 더욱이 드론과 인공지능 군사기술을 적용한 다량의 무기체계들이 동원되고 있다. 정밀타격 능력을 가지면서도 크게 저렴하여 대량으로 동원할 수 있는 무기들이 싸우는 전장이 된 것이다. 이른바 ‘정밀 대량타격’(Precise Mass)의 시대를 열고 있다.6 이에 따라 이 전쟁은 동서 양 진영의 전쟁무기체계와 전쟁수행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새로운 양상의 미래 전쟁을 예고한다. 이는 전 세계에 걸친 군비경쟁 촉진제로 작용함으로써 인류의 자원과 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한 공존을 위해서가 아닌 파괴적인 전쟁을 준비하는 데 더욱 낭비될 것임을 의미한다.
1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양측 군인 및 민간인 인명 피해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의 추정치는 다음 두 건의 최근 보도를 참고한 것이다. Elsa Court, “A Very Bloody War,” Kyiv Independent, February 13, 2025; Olga Ivshina, “Invisible Losses…in Ukraine,” BBC, 23 February 2025.
2 Philip Short, Philip, Putin,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2022.
3 이삼성,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한길사, 2023.
4 Olga Ivshina, “Invisible Losses…in Ukraine,” BBC, 23 February 2025.
5 Paul Adams, “Ukraine gave up its nuclear weapons. Now it's asking why,” BBC, 5 December 2024.
6 Michael Horowitz, “Battles of Precise Mass: Technology Is Remaking War and America Must Adapt,“ Foreign Affairs, Volume 103, No.6 (November/Dec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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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성(한림대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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