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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푸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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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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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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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라 칭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 전쟁이 3년이나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로 러시아가 빠르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애국심과 미국과 유럽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끈질기게 막아내고 있다. 3년이 지난 2025년 현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등 국제 정세의 변화로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전쟁의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필자에게는 이 전쟁 자체도 곤혹스러운데, 전쟁이 끝난 이후 양국의 관계를 이전으로 돌이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 ‘러시아 문학’의 범주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025년 1월 모스크바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몇 차례 방문하면서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차분하고 여유로운 도시 분위기에 기이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사건은 함께 방문했던 동료가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5시간이나 입국을 거부당하고 검사장에 격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격리되어 있다가 5시간 후 별다른 설명 없이 입국을 허락받는 것을 보면서 ‘아, 여기가 러시아였지’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항 대기실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던 필자의 시선을 끈 것은 공항 안내 전광판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의 초상화였다. 2019년부터 세례메티예보 공항의 정식 명칭은 ‘푸시킨 기념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 실시한 “위대한 러시아인”이라는 대국민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푸시킨이 공항을 상징하는 인물로 선정된 것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대학이나 관공서, 국가기관 건물에 장소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기는 한데, 모스크바 국제 공항에 시인 푸시킨의 이름을 붙인 것은 조금 의외였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푸시킨을 모스크바 공항의 상징적 인물로 선정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푸시킨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를 쓴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짧은 내용의 시라 여기에 시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오리라 믿어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우울하구나,

모든 것은 순간이고, 모든 것은 지나가리니,

지나간 것은 아름다우리라. (1825년)


역사 소설 『대위의 딸』의 작가이자,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의 원작자이기도 한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은 ‘러시아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장 위대한 러시아의 작가이다. 18세기에 시작된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정책 이후 러시아는 서유럽의 문화를 열광적으로 수용했으며, 귀족들은 러시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정도로 프랑스 문화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푸시킨은 유럽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속에 러시아의 역사, 문화, 전통을 러시아어로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모스크바의 가장 큰 국제 공항인 셰레메티예보 공항이 푸시킨의 이름을 기념한다는 것이 조금 뜬금없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가장 러시아적이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민족이나 종교, 이념과 관계없이 러시아 땅 안에 거주하던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예술가, 그가 바로 푸시킨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푸시킨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러시아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푸시킨의 시를 읽고 암송하며 러시아어의 아름다움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교육을 받았고, 이것은 우크라이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푸시킨이 잠시 머물다 간 곳은 그곳이 어디건 푸시킨 박물관이 되었으며, 많은 교육 기관에는 푸시킨 동상이 설립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수도 키이우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많은 도시들에서 푸시킨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러-우 전쟁이 시작된 직후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에서는 곧바로 푸시킨 동상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구소련 공화국들에서 정치적 독립의 의지로 레닌 동상을 철거했듯이, 우크라이나에서는 탈러시아화의 상징으로 모든 푸시킨 동상을 철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2년 4월 9일 푸시킨 동상 철거를 결정한 테르노폴 시의 시장 세르게이 나달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것은 해체되어야 한다. 그중에는 러시아 작가 기념 동상도 있다.”


이후 체르니고프, 자포로지예, 하리코프, 지토미르, 벨고로드 등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 도시들에서 푸시킨 동상은 차례대로 철거되기 시작했다. 푸시킨 동상 철거는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분노를 반영하는 사건이며, 무엇보다 러시아 문화 전통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학사적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푸시킨 다음 세대에 등장한 또 한 명의 뛰어난 작가가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페테르부르크에서 작가로 활동한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다. 초기에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낯설었던 우크라이나의 전설과 민속을 소재로 한 단편집을 발표하며 인기를 끌었고, 이후에는 페테르부르크의 가난하고 천대받는 하급 관리들의 비참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코」, 「외투」 등의 단편들로 러시아 독자들에게 크게 사랑을 받았던 작가이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배출한 첫 번째 국민 작가이자, 러시아 문학의 장르를 시에서 산문으로 확장시키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작가였다. 푸시킨과 고골은 문단의 선후배로 러시아 문학의 근대화 과정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지만, 고골에게 푸시킨은 단순히 선배 작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골에게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제공하며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푸시킨이었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푸시킨과 고골은 그들의 출신지나 민족성과 관계없이 러시아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으며, 이는 러시아 독자들이나 우크라이나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골의 시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였고, 고골은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했기에, 두 작가는 대립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문단의 선후배로, 친밀한 조력자와 계승자로 평가 받아왔던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은 푸시킨의 시를 읽고 암송하며, 예술가 푸시킨의 이름을 기념해 왔다. 그러나 상황은 전쟁과 더불어 완전히 달라졌다. 푸시킨이 있었기에 작가 고골이 있을 수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서 푸시킨의 이름을 삭제하고 있다. 


오데사 작가들


러-우 전쟁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도시 중에 오데사라는 곳이 있다. 우크라이나 남서부, 흑해 북서부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오데사는 인구수에 있어 키이우, 하리코프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서 러시아의 공격 목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 이전에 오데사는 러시아 문화사에서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지는 도시였다. 에이젠슈테인 감독의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의 무대가 되는 도시로서, 여기에 등장하는 ‘오데사 계단의 시위 군중’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19세기에는 푸시킨이 잠시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러시아 문학사에서 오데사는 20세기 초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러시아 문학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이삭 바벨, 일리프와 페트로프, 유리 올레샤 등이 오데사 출신의 작가들인데 이들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수도의 작가들과는 다르게 재기발랄한 재능으로 세상 물정에 밝으면서도 낙천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현대 러시아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해 나갔다. 이는 남쪽의 항구 도시라는 오데사 특유의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고골과 마찬가지로 오데사 출신의 작가들도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지금까지 이들은 러시아 문학 전통의 흐름 속에서 그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문화적으로 완전한 결별을 택한 상황에서 이들 역시 고골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작가로 부를 것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 작가로 부를 것인지의 문제가 향후 문학적 논쟁의 주제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지성사와의 결별을 선택함으로써 자국 역사에 남은 러시아 문화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들을 여전히 러시아 작가로 인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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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한림대 러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