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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사에서 배우는 대학 위기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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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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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컬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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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대학의 기원이라고 인정받는 기점은 1088년에 이탈리아 볼로냐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학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로마 제국의 법과 교육의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하였다. 이외에도 11세기부터 12세기 중반에 걸쳐 유럽 전역의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설립된 대학에서 다루는 학문 분야는 기존의 신학 이외에도 소위 세속 학문이라 치부되었던  의학, 법학까지 포함하여 학부의 틀을 갖추게 되었고 특히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한 교양학부도 이 당시에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중세 대학은 그 이전까지 교회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학에 가져오게 되어 서양학문의 발전을 이끌게 되었다. 이 당시의 대학은 학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세 유럽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중세가 지나고 17세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대학은 대응하지 못하여 그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중세 대학의 쇠퇴의 배경에는 당시 유럽 국왕들의 대학 간 교류와 이전의 제한, 대학 자치특권의 박탈, 흑사병 창궐 등 다양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중세 말기 강력해진 유럽의 왕들은 왕국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결과, 교수와 학생이 국가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한은 결국 대학 간의 지식 교류의 네트워크가 끊어지게 만들어 대학 발전의 기폭제를 사라져 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당시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응답하지 못한 것도 대학이 쇠락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즉 대학의 학문 체계, 교육 내용, 학부의 구성 등에 전혀 변화가 없었으며, 16세기의 종교적 분열은 대학을 더욱 경직시켰다. 따라서 학문은 철저하게 종교에 종속되었고, 특히 근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대학의 과학기술을 리드할 수 있는 혁신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대학 내의 암울한 상황과는 달리 당시 대학 밖에서는 자연과학이나 기계공학을 연구하는 인력이 늘고 연구 공간은 확대되었다. 

  대학이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된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인쇄 출판물의 확산을 들 수 있다. 인쇄 기술의 발달은 강의의 원활화를 통한 대학의 황금기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대학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었다. 즉 인쇄술의 발전은 그동안 대학을 통해서만 전수받을 수 있었던 지식을 인쇄된 책으로도 습득할 수 있게 해 대학이라는 기관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리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대량 발간되는 출판물을 활용하여 전문학교, 살롱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장소는 당시의 인문학자, 예술가, 과학자들이 만나서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다. 즉 중세 대학만이 가졌던 독점적인 교육 방식에 대응하는 새로운 지식 공유 플랫폼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쇠락의 길에 접어든 대학들은 다시 한번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사회의 거대한 움직임을 수용하여 융성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든 유럽의 제국들과 미국은 산업화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소량 생산을 통한 소량 소비의 시대에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로 급격히 탈바꿈하였다. 이른바 동력혁명을 바탕으로 구미 각국들은 급속하게 산업화 시대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대량 생산은 기업이라는 체계화된 조직이 담당하게 되었고, 이들 조직이 커감에 따라 교육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산업혁명의 근원지인 영국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실용 학문에 대한 수요의 폭증으로 영국 주요 산업도시 6곳에 대학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산업혁명에 따른 과학과 공학의 전문적인 교육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들 지역의 대학들은 공장 벽의 붉은 벽돌을 의미하는 ‘붉은 벽돌 대학교(Red Brick Universities)’라고 불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주요한 대학들이 기존의 리버럴아츠 단과대학에 공학과 경영학을 추가하여 유니버시티로 급속히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20세기가 접어들면서 대학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며 현대 사회의 교육 수요에 충실히 부응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대학이라는 유기적 조직의 성쇠를 보면 중세 초기에는 사회, 정치, 환경 등의 변화에 잘 적응해서 급속히 성장하여 위세를 떨치다가 중세 말 근세에 이르러서는 영향력의 쇠퇴를 겪게 되고 또 다시 근대 산업화 시기부터 새롭게 부흥의 기간을 거쳐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많은 학자들과 언론들은 대학의 위기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위기의 내용은 생각해 보면 형태만 달라졌을 뿐 중세 대학들이 겪었던 위기와 유사한 면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1960년대에 기초적인 아이디어가 시작되고 1970~80년대를 거쳐서 미국 전역에 구축된 알파넷은 1990년대부터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대륙 간의 연결을 통해 급속한 보급과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통신망의 확충은 마치 중세 유럽의 인쇄술의 발명이 가져온 창조적 파괴에 못지않은 큰 충격을 대학과 사회에 던졌다. 중세 시민들이 대학이 아니라 살롱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기존에 대학만이 보유하고 전수하던 지식보다 훨씬 많은 이론 및 실용적 지식의 상당량을 인터넷을 통해서 학습할 수 있게 되었고 더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중세에 대학 구성원들만 도시와 국가를 넘나들 수 있었던 지식 교류의 기회를 인터넷이라는 정보 고속도로를 통해서 누구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이렇게 생성되고 교류되어 다듬어진 지식들은 구 지식을 급속하게 대체시키는 역사상 유래 없는 정보의 대변혁 시대를 초래하였다. Samuel Arbesman에 따르면 지식의 반감기는 물리학의 경우는 약 13년, 심리학의 경우는 약 7년에 이르는 등 많은 지식들의 수명이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많은 연구 분야 역시 대학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어서 또 다른 측면의 대학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19세기 초 ‘근대 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카를 훔볼트가 교육 중심 대학에 연구 기능을 추가하여 강조한 이후에  대학에서는 교육 이외에도 연구라는 것이 2대 기능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제는 연구의 범주도 상당량 외부의 기관들에게 밀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기의 대학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대학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사회적 교육 수요에 맞는 또는 사회적 교육 수요를 리드할 수 있도록 지식의 폭과 깊이 그리고 전달 방법 측면에서 획기적인 교육 서비스의 제공이 필수적이다. 한때 융성했던 중세대학의 몰락의 원인은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전통적인 신학, 의학, 그리고 법학 중심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세대학의 교과과정의 고수가 21세기의 대학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수십 년 전 부모들이 대학을 다녔던 시절의 커리큘럼과 유사한 것이 현재 한국 대학의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구미에서는 이미 혁신적이고 새로운 교과과정과 형식에 대한 대담한 시도가 대학 및 대학의 담장 밖에서 이어지고 있다. Singularity university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미국 나사와 구글이 협업하여 기업과 더불어 교육과 연구 그리고 컨설팅을 아우르는 교육기구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으며, MIT의 미디어랩은 26명의 대표 교수를 중심으로 26개의 연구팀이 연간 35개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석박사과정을 운영하고 과학기술을 융합한 실용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또한 벤처 투자자본의 후원을 받아 맞춤형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여 성공한 미네르바대학 등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교육기관들이 마치 중세의 살롱처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대학의 닫혀진 울타리를 헐어 내는 프레임 변화의 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의 붉은 벽돌 대학교(Red Brick Universities)들처럼 기업 및 지역과 협력하는 더욱 파격적인 형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최근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한림대학교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마이크로 캠퍼스의 설립은 매우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지식의 전수와 협력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MIT에서 발간한 ‘An Affordable New Educational Institution’이라는 아티클에서도 동일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아티클에서는 마이크로 디그리를 조합해 만드는 SPOCs(Small Private Online Courses)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특정 전공의 타깃 학생들을 위해 심화 과정이나 맞춤형 과정으로 설계하는 학점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대학의 지역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역할을 강조하여 대학, 기업, 지방정부가 협업해 만드는 Co-Op프로그램을 제안하는데, 이는 교수들이 안식년 기간에 연구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지방정부에서 근무하며 지역의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대학의 또 다른 소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제안 역시 한림대에서 지향하는 글로컬 사업에 포함되어 있어서 큰 변화의 도입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요한 제안점인 ‘AI 기반 교육’ 역시 지식이 상식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한번 고민해 보고 도전해 볼 만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산업화 초기 시대에 반복적인 작업을 기계화를 시킴으로서 근로자들로 하여금 남은 시간과 열정을 창의적인 영역에 쏟아 붇게 유도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대학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구성원으로서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연구하고 지도자의 양성을 추구하며 미래 사회에 기여할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었다. 앞으로도 대학은 학생들에게 IT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 사고력과 윤리성을 지닌,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시민을 배출하는 인재 양성의 산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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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석(한림대 사회과학대학 학장·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