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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제도와 도전정신 ― ‘한림 글로컬대학’ 성공을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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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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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컬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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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모든 조직은 흥하기도 망하기도 한다. 어떻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도 기업도 그리고 대학도 융성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국가, 기업, 대학의 흥망성쇠,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조직과 관련한 학계 논의를 정리하면 ‘어떤 제도를 도입하느냐’ 그리고 ‘어떤 조직 문화를 가졌느냐’로 귀착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제도의 도입을 중시하고, 정치 지도자나 기업인들은 조직 혁신 문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제도와 문화는 상호보완 관계다. 제도가 바뀌어도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어렵고, 조직 문화는 바뀌었는데 제도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목표 달성이 요원해진다.

  본 글은 한림대학이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후 앞으로 5년 동안 수행해야 할 ‘제도’와 ‘문화’의 혁신 방향을 다루고자 한다. ‘한림 글로컬대학’의 구체적인 내용은 교육부에 제출한 ‘(글로컬 대학) 제안서’에 담겨있으므로 논의하지 않고 혁신의 방향만 언급한다.

  요약하면 ‘한림 글로컬대학’에 도입될 새로운 제도는 구성원 모두를 포함하는 ‘포용성’과 무한 변신이 가능한 아메바식 ‘유연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 또 조직 문화는 도전정신이 중요하고 ‘글로컬대학’을 성공시키겠다는 구성원의 일치된 의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대학혁신의 당위성


최근 언론은 국내 18세 인구가 2023년에 44만 2천 명, 2035년 38만 5천 명, 2038년 29만 5천 명으로 그리고 17년 후인 2041년에는 20만 명 가까이 감소해 24만 5천 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신입생 미충원 문제는 거의 모든 지방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 되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의대를 제외하고 지방대의 거의 모든 학과가 시나브로 사라지거나 축소될 위기에 있다는 것은 예측도 전망도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과 그로 인한 대학 재정 및 교육과 연구 여건 악화는 재학생의 수도권 타 대학 편입 유출로 이어지고 지방대학의 존립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재학생 감소에 따른 여파는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심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결국 신입생 감소에 따른 지역 경제의 타격, 그리고 지역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젊은 층의 수도권 유출은 기업의 투자 위축을 초래하여 지역은 저성장과 불황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이미 지역 대학의 위기는 대학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대학의 기능 조정과 제도 혁신, 그리고 지방과 대학의 협력 및 상생 노력이 필요했다. 바로 교육부가 주도한 ‘글로컬대학30’ 사업의 취지다. 대학이 학문과 진리 탐구라는 전통적 역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이슈와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문제에도 적극적 역할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 방안이 ‘글로컬대학30’ 사업의 핵심이다. 따라서 ‘글로컬대학30’ 제안서에 고령화와 인구감소, 지역 경제침체 등의 어려움에 직면한 지역의 대학들이 주민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과의 협력을 창출하며, 지역 창업을 활성화하는 방안 등의 대학의 새로운 임무 수행을 통한 지역의 성장과 발전 방안을 제시하게 하였다. 

  한림대학은 ‘글로컬대학 제안서’에 “학과를 3대 융합분야(의료·바이오, 인문사회, AI)로 전면 개편하여 지역산업에 필요한 융합 인재를 육성하는 전략”으로 대학의 학과 조직을 개편하고, 교육의 경우 “AI교육과 융합교육으로 새로운 대학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한국형 대학모델로 승화시켜 이를 세계화하려는 글로컬한 구상”을 담았다. 

  한림대학의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한림대가 ‘글로컬대학’의 “혁신 방향을 제시하는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모델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선정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지원한 94곳 가운데 국공립대가 21곳 중 7곳(33.3%)이 선정되었고, 사립대는 73곳 중 3곳(4.1%)이 선정되었다. 사립대 3곳은 포항공대, 울산대, 한림대의 3개교인데 재단 규모나 포항공대와 울산대가 가진 공대적 특성을 감안하면 진정한 종합사립대의 혁신모델은 한림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림대는 ‘글로컬대학’으로서 국내 대학의 혁신모델이 되어야 하고 그 혁신모델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하는 이중 부담(double burden)을 갖는다.

  둘째, ‘글로컬대학’ 5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한림대가 일류 대학으로 도약하는 ‘별의 순간’(Sterndunde)을 맞을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지방대학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림대학 개교 42년에 맞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의미다. 한림대는 앞으로 5년 ‘우연’을 ‘필연’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한림 글로컬대학’ 성공을 위한 첫째 조건 ― ‘제도의 포용성·유연성’

 

하버드대학의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번영으로 이끄는 국가의 특징을 ‘포용적’(inclusive) 정치·경제 제도의 도입에서 찾았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Venice)는 중세 시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하여 1330년 즈음 파리에도 견주고, 런던에 비해 세 배나 더 큰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베네치아 경제가 확대될 수 있었던 토대는 포용적 방향의 경제제도를 이끈 ‘코멘다’(commenda)라는 초기 형태의 합자회사였다. ‘코멘다’는 자본이 없는 젊은 사업가들이 투자자를 모집하여 성공하는 경우 신분 상승을 노릴 수 있는 개방적인 계약제도를 가졌고 그 때문에 베네치아의 번영이 가능했다. 

  ‘코멘다’가 가진 제도의 ‘포용성’이 좋은 정부(good government)와 나쁜 정부(bad government)를 결정했고, 그 포용성 때문에 권력이 사회 전반에 고르게 분배되었으며, 광범위한 사회계층의 ‘권한 강화’가 이루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종합하면 사회 제도가 가진 ‘포용성’ 존재 여부가 조직의 번영과 쇠락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한림 글로컬대학’도 ‘포용적’이고 ‘유연한’ 제도의 도입을 약속하고 있다. 벽으로 갈라져 영역의 이권(利權)이 지속 보장되는 ‘학과 체제’에서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AI융합연구원, 도헌학술원의 분야별 ‘연구원 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연구원 체제’는 무한 변신 가능한 유연 아메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연구원 체제’에서는 학과나 교수가 사회적 수요와 필요에 따라 연구와 강의 그룹을 만들었다가 필요에 따라 흩어지게 될 것이다. 연구원 내에서 그리고 연구원과 연구원 사이에서 연구와 강의 그룹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어 융합적이고 포용적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환경적 필요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질 연구·강의 조직에는 전임교수뿐만 아니라 연구원도 외부 강사도 함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 윤리’가 연구 주제가 된다면 AI융합연구원 소속 교수, 도헌학술원 소속 윤리 철학 겸임교수,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의 뇌과학 분야 연구원이 함께 뭉쳐 연구하고 강의하는 중층 아메바 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 기존의 학과 체제에서는 만들어 내기 힘든 유연한 조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연구원 체제’에서는 굳이 학장이나 학과장 중심의 위계적 행정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수평적 연결이 핵심이 될 것이다. 일정의 학문 분야를 자신의 전유물로 운영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에서 벗어나 언제라도 융합이 가능한 수평적 연결의 아메바 조직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다.

  번성했던 베네치아가 1314년 정부가 무역을 장악해 국유 독점화하면서 도시 몰락이 시작된 사례를 참고하면, 학과 체제에 따른 칸 나누기 학문 독점을 극복하지 않을 때 한림대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한림 글로컬대학’에 도입될 새 제도에 포용성, 유연성, 융합성이 담겼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한림 글로컬 대학’ 성공을 위한 둘째 조건  ― ‘변화에의 의지’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는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19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건희식 경영의 본격 시작이었다. 

  이건희는 곧바로 다량 생산의 삼성에서 품질과 기술 중시의 삼성으로 조직 변화를 유도해 간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말한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변화로 나아가는 연장선상에 있다. 핵심은 ‘국내 최고의 삼성’에서 ‘세계 최고의 삼성’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 변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회의 때마다 “불량 생산은 범죄입니다”,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경영을 과감히 버리고 질 위주로 갑니다”, “앞으로 21세기에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야 살아남습니다” 등 안주하지 말고 계속 변화하여 세계의 흐름을 따라 잡으라고 주문했다. 일류의 사고를 하고 최고 일류의 제품을 만들라는 주문으로 삼성 구성원의 혁신 의식을 일깨웠던 것이다. 이건희식 ‘바꿔’ 의식 전환은 ‘신경영 대장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했다. “구조적인 문제는 그 근본부터 해결해야 하고 그 근본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이는 국내 1위를 세계의 톱 랭킹에 올려놓기 위해 임직원의 사고 전환을 유도하는 전략이었다. 

  ‘한림 글로컬대학’의 성공은 구성원의 대학 혁신에 대한 동의와 적극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물론 구성원 내부에서 ‘바꿔서 더 나아짐’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의심과 질의도 가능하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은 사람이든 생물체든 그대로 있을 때보다는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할 때 생존이 가능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변화 의지’와 ‘함께 간다(Go Together!)’는 의식이 합치되어야 ‘한림 글로컬대학’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도전 없이는 성공도 없어


1960년대 설탕을 만들던 제일제당은 이제 CJ푸드, CJ바이오, CJ로지스틱스, CJ ENM 엔터테인먼트로 진화 성장해 가고 있다. 또 1969년 창립된 삼성전자공업은 이제 반도체와 핸드폰, 전자기기 회사로 나뉘어 발전하고 있다. 한편 오래된 골동품을 취급했던 인사동의 통인가게는 포장이사를 국내에 도입한 ‘통인익스트레스’, 해외 화물 운송 기업 ‘통인인터네셔널’, ‘통인화랑’, ‘통인갤러리’로 확장해 가고 있다. 변화하지 않고, 혁신하지 않았더라면 사라지고 말았을 기업들이다. 대학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한림대의 변신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5년 동안 흔들림 없이 교육, 연구라는 기존의 대학 기능을 뛰어넘어 산학협력 및 강원도 지역사회 기여까지로 대학 기능을 확장해야 한다. 지역사회 기여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강의와 연구에만 집중하는 교수 역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사회 발전 전략도 제시할 수 있고, 인문·사회·자연·IT·의학으로 융합·협업할 줄 알고, 지·산·학 협력을 이끌 수 있는 교수로 변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헌 윤대원 일송학원 이사장은 평소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도전(challenges)과 응전(responses)’이 역사 발전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오직 우리 자신만이 운명의 주인공이고 도전자”라고 사자후(獅子吼)로 역설해 왔다. 도헌의 ‘청년 도전정신’이 필요한 결정적 순간이다. 도전이 혁신이 되고, 혁신의 점(點)이 선(線)이 되고, 선(線)들이 모여 ‘한림 글로컬대학’의 미래가 되는 순간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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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前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