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는가?
페이지 정보
- 최고관리자
- 23-09-19
- 515 views
- 사회2
본문
1.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미적용 논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이다. 대구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의 이슬람 사원 건립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사건과 함께 최근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이주민 관련 이슈이다. 우여곡절 끝에 필리핀 등지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 명을 도입하는 시범사업이 서울에서 시행된다. 가사노동자라는 직종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가사 및 간병노동자와 같은 돌봄이민은 최근 국제이주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이다. 대부분 여성인 돌봄노동자들이 유럽이나 중동,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이제 한국도 이들의 목적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외국인을 받아들여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역시 역사적으로 국제이주의 주된 동인 중 하나였다. 유럽인들의 신세계로의 이주는 인구 증가가 초래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탈출구 역할을 했고 2차대전으로 많은 젊은 남성을 잃은 유럽의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해준 것 역시 유럽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현재 유럽이나 일본, 한국 등 많은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이주민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배경에도 역시 저출산이나 특정 분야 인력 부족과 같은 인구 및 인력문제가 존재한다.
인구문제 해결이나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에 효과적인지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최저임금 미적용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물론 정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가사근로자의 급여는 월 200만 원 수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여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업을 선도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월 100만 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골자로 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같이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등 대우한다는 발상은 내국인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 그래서 한번 대중적인 관심을 끈 이상 앞으로도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내국인과 구분되는 차등 임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적절한 발상인지 따져보자.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 “업무 자체에 대한 이해나 경험 부족으로 생산성이 낮다.” “불성실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 한국인 직원보다 임금을 덜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이보다는 드러내어 얘기하기를 주저하지만 출신 국가의 임금 수준이 한국보다 몇 배 낮다는 점을 들어 덜 주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물론 후자는 조금만 따져보면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현재 세계 각국의 소득이나 임금 수준이 그 어느 시대보다 격차가 커져있고 나라마다 제각각인데 출신국가를 고려해 임금체계를 만든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생산성이 떨어지니 덜 주어도 된다는 견해도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이 외국인들을 구하지 못해 난리인 것을 보면 외국인들의 생산성에 별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임금에 차이를 둘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법에 명시된 객관적이고 입증가능한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 피상적인 인상이나 대중의 정서, 만들어진 여론, 몇몇 통계수치를 들어 주장하는 것은 어설픈 일이다. 만약 일본가게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일본어가 서툴다고, 결함이 있는 민족성을 가졌다고 차등대우 하면 어떨까?
2. 차등 대우에 익숙한 한국사회
다소 무리한 주장임에도 내국인과 외국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배경에는 차등 대우(unequal treatment)를 자극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존재한다. 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현대사회의 산업이나 직장현실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개인 단위의 평가와 줄세우기가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능력주의의 위력에서 볼 수 있듯이 성취에 상응하는 보상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버텨내기 어렵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한술 더 뜨고 있다. 개별적인 평가를 넘어 외국 출신 집단 전체를 편견에 기대어 자의적으로 평가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성실’근로자와 같은 용어에는 외국인은 성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과 이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멸이 담겨있다. 물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기는 쉽지 않다. 다른 어떤 근거보다도 한국사회에서 효력이 있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칙이나 선진국의 사례가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등 임금 주장을 비판하는 데 효과적이다.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노동기구에서 제시한 기준과 같은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유형의 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동일한 노동이나 가치가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젠더 불평등과 성별 임금격차와 관련해 언급되는 이 원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았던 산업화 초기 페미니즘과 여성노동운동의 핵심적인 사안으로 등장했다. 1830년대 영국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에서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는 1869년 재무부에 재직중인 여성공무원들이 남성공무원에 비해 급여를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며 동일 임금을 요구한 기고문이 뉴욕 타임즈에 게재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여성들이 제도화의 물꼬를 텄다. 1966년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이 계기가 되어 1972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노동법에 포함되었다. 여성들 덕분에 이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는 보편적인 규칙이 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보고서 『2022년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에 따르면 조사대상 41개 국가 중 내국인과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다른 기준에 따라 지급하는 국가는 한 곳도 없다.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현실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2020년 12월에 발표된 국제노동기구의 보고서 『이주민의 임금격차: 이주민과 내국인 간의 임금차이 분석』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많은 나라들에서 이주민과 내국인 간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이주민이 내국인보다 평균 13% 더 적게 받고 있으며 어떤 나라에서는 그 비율이 42%에 이른다. 사이프러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그 비율이 각각 42%, 30%, 25%를 기록했다. 역으로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 평균은 9%에 그쳤다. 한국 역시 서로 다른 견해가 있지만 OECD 자료에 따르면 이주민 대 내국인 간의 임금 격차가 회원국 중 가장 큰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여성 이주민들의 임금이 낮았다. 2021년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이주노동자의 노동 여건 및 정책 과제』에 따르면, 남성 외국인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218만 1천 원이었지만 여성 외국인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195만 2천 원에 그쳤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20년 이상 OECD 1위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3. 동등한 대우의 철학적 토대
적어도 근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리가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노동, 정치, 시민사회와 같은 영역이나 교육, 투표권, 복지와 같은 제도에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들은 다양했다. 성, 성적 지향, 연령, 가족상황, 임신 여부, 유전적인 특징, 출신지역, 종족, 민족, 인종, 정치적 견해, 노조가입 여부, 종교, 외모, 건강상태, 생활태도, 장애여부 등 인간을 생물의 종처럼 구분하고자 했던 열정이 찾아낸 조건들은 끝도 없었다. 차별의 근거가 되어온 요인들은 인종(민족, 종교), 성, 계급(신분)과 같이 현대사회에서 불평등을 초래하는 세 가지 주된 요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역사가 포용적인 경향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식민지에서는 기존에 주민들이 누렸던 권리가 박탈당하고 권위주의 정권은 지역, 이념, 종교, 성, 인종 등 다양한 잣대로 권리와 권력에서 배제된 집단을 창출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 역시 한편으로는 보다 동등한 방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차등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저임금을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후자의 경향을 보여준다면, 외국인 선원들의 최저임금이 한국인 동료들의 것과 차이를 줄여가고 있는 것은 전자의 사례일 수 있다. 고용조건이 열악한 것으로 악명높은 선원들의 최저임금은 선원법에 따라 수협중앙회와 선원노련의 단체협약으로 정해지는데 그동안은 외국인이 한국인의 85% 정도만을 받았다. 그러다가 최근 매년 5%포인트씩 격차를 줄여 2026년에는 같은 수준이 되게 하는 개선안이 도출된 것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논쟁에서 이들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입장의 논거로 국제사회의 관행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것이 내국인 노동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임금 압착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언급된다. 이런 식의 논거는 오래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고려한 부차적이고 도구적인 차원의 주제였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 현실을 고려할 때 비난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실제 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내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악화시키는데 활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소셜 덤핑’ 현상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논리를 비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소셜 덤핑(social dumping)’이라는 용어는 유럽연합의 경우처럼 국가 간 자본과 노동력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임금이 경쟁적으로 낮아지는 등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 악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서유럽 국가들은 임금이 낮아 ‘기업하기 좋은’ 동유럽 국가들로 기업이 옮겨가고 투자가 몰리고 자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 하락의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동유럽 국가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높은 생산성과 외국 기업에 유리한 고용조건은 자국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을 대가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동유럽이나 서유럽 모두 내국인, 외국인을 막론하고 노동자들이 고용조건의 ‘덤핑’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과 같은 소수자들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이유가 이러한 현실적인, 자민족중심적인 한계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다양한 인간의 특질이나 정체성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는 철학적인 이유나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존엄성이라는 진부한 용어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 존중받아야 하는 근거는 모든 인간, 모든 민족이 자신의 삶을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능력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영향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정책의 근거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민중은 개, 돼지”라는 극한 표현이 완전히 한 개인의 일탈로만 여겨지지는 않고, 상위 20% 또는 그보다 적은 비율만이 사회나 조직에 쓸모있는 존재하는 생각이 확산되어 온 한국사회에서 우리 밖에 있는 이들의 사회적 기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동등한 대우가 가당치 않아 보이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길을 여는 것은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관계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국사회 내부의 과제인 것이다. 이 역시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도구주의적인 시각일 수는 있지만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천명한 세계인권선언이 2차대전이 보여준 야만으로의 퇴행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 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엄한진(한림대 사회학과)
- 이전글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대학의 숙제 23.10.10
- 다음글지역대학의 세 가지 생존 전략 2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