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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재난보도와 좋은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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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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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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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 너무 많이 발생했다. 오송지하차도 참사도 그 중 하나이다. 지난 7월 15일, 쏟아진 비가 충북 오송 지하차도에 갑자기 밀려들어 24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언론들은 누구의 잘못인지를 밝혀내려는 추측성 기사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고 6일 후(21일)에 국무조정실이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도 나간 걸로 꾸민 게 강하게 의심된다”는 발표를 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파출소 일선 경찰들이 비가 쏟아지는 그 시기에 현장에 출동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전형적인 정부 발표 받아쓰기 보도였다. 일선 파출소 경찰들의 입장을 다루거나 인터뷰한 뉴스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다룬 언론들은 그나마 취재하려는 노력이라도 엿보였지만 그런 언론조차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23일 경찰이 당시 출동한 순찰차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했다. 국무조정실은 경찰이 현장에 가지도 않고 출동한 것처럼 꾸민 게 의심된다고 발표했는데, 영상에는 경찰관들이 침수 현장 여러 곳을 다니며 통제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참사 현장에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침수 현장에서 거리 통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21일 보도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것은 사실이니 오보라 할 수는 없지만 진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좋은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The 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가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The Elements of Journalism)을 보면,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고,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좋은 저널리즘은 사실 확인을 통해 진실을 밝혀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급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의 ‘사실 확인 없는 정부 발표 받아쓰기’는 지역 재난보도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취재 관행이다. 그 관행 때문에 세월호 참사 때 ‘전원 구조’ 오보가 나온 것이다. 정부 발표 받아쓰기 보도를 그냥 관행이라고 치부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중 구조요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구조 선박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선수 주위만 맴돌고 있었다. 목포MBC 보도부장에게 “전원 구조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2백여 명 이상은 갇힌 듯하다”고 보고했고, 동료 기자들에게도 “구조자 수가 중복됐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사고 해역의 구조 책임을 맡고 있던 목포 해양경찰서장에게도 확인했더니 “구조자 수는 160여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고 당일 목포MBC 보도국 간부들은 서울MBC에 ‘전원 구조’보도가 오류임을 언급했지만, MBC를 비롯한 모든 언론은 중앙 재난안전 대책본부의 잘못된 발표를 그대로 실었다.”(박영훈 목포MBC기자,  「받아쓰기, 그리고 남은 것들…」, 『방송기자』, 7・8월호.)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기자들의 취재기를 분석해본 적이 있다. 세월호는 바다 가운데 있어 현장 접근이 어려워 직접 확인은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듣는 발언과 정부 발표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서 기자들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을 겪었다. 이때, 기자들은 정부 발표를 선택했다. 게다가 정부 발표에 의문을 갖거나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질문 없는 정부 발표 신뢰 관행’을 실천함으로써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고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적는 취재를 하고 있었다고 기자들은 기술했다. ‘질문’은 취재의 기본인데, 세월호 현장 취재에서 정부 발표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월호 보도에서 취재원 사용을 분석한 송상근의 연구(「취재원 사용의 원칙과 현실: 세월호 보도를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2016.)를 보면, 취재원의 40% 이상이 익명으로 처리됐고 취재원이 전달하는 뉴스는 정부와 공직자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발표를 신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잘못 취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의문이 가는 점을 찾아내서 사실을 확인하려고 애써야 한다. 또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재난 상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정부 발표를 전달할 경우에도 최소한 현장의 상황을 함께 보도해서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지역 재난은 서울에서 발생한 재난보다 보도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서울 본사에 있는 데스크와 지역 취재 기자 사이에 소통이 원활해야 하고 서로 신뢰해야 좋은 보도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재난 현장에서 자율적인 취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스크가 취재 현장을 자주 바꾸라고 지시해 기자가 현장에서 판단한 대로 취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 경험 많은 기자들보다 수습기자 같이 경험이 부족한 기자들이 많다는 점도 자율적 취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이다.

 

지역 재난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등장하기도 하고 압사사고 같은 상상하지 못한 사회재난들이 발생하고 있다. 재난보도는 국민들의 목숨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다. 평소에 기자들이 재난 상황을 어떻게 취재해야하는지 체화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재난 전문 데스크와 재난 전문 기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재난보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기자와 언론사 조직뿐 아니라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얼마 전 지진 현장에서 취재했던 튀르키예 기자들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전달해야 할 뉴스들이 있지만 인터넷이 끊겨 전달할 방법이 없어 고심했다고 한다. 인터넷이 없는 재난 현장에서 안전과 직결되는 뉴스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대비하고 있는가? 장기적 안목으로 재난보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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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한림대 미디어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