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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집단건강의 사회적 건강결정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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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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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보건·간호

본문

1. 건강과 건강결정요인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로서의 건강은 전통적으로 질병의 없음과 해부학적, 생리학적, 그리고 심리적 완전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는 1948년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상태로 확대한 바 있다. 이러한 WHO의 건강 정의는 건강정책의 수립에 있어 실행적 의미가 모호하고, 측정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건강을 생의학적 문제로 국한한 경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전향적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1984년 WHO는 1948년의 정의를 개정하여 “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열정을 실현하고, 욕구를 충족하고, 그리고 환경에 적응 또는 환경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능력”이라 하였다. 여기서 건강은 삶의 목적이라는 정적 상태가 아니라, 삶을 위한 자원(resource), 또는 복원력(resilience)이라는 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는 모든 이에게 주어져야 할 삶의 자원으로서의 건강(Health for All) 개념과 이어지게 된다.


한편 하버드 보건대학원 Norman Deniels 교수는 건강이라는 재화가 다른 상품과 달리 특별한 가치를 갖는 이유를 우리 모두에게 삶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고, 세계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영국의 사회역학자 Marmot 교수는 건강은 사회 정의의 전제조건이고, 한 국가나 사회의 특정 집단이 건강으로 인해 차별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는 해당 사회 질서의 재편을 필요로 한다고 한 바 있다.


건강에 대한 개념적 정의와 건강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달리함에 따라 이러한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 중 대표적으로 Evans와 Stoddart(1990)는 건강을 질병, 건강상태, 그리고 기능수준 및 well-being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로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행태뿐 아니라 사회적, 물리적 환경의 역할과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건강과 기능수준이 궁극적으로는 well-being으로 나아가야 함을 직시함으로써 WHO의 전통적 견해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WHO에서는 2007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한 보고서에서 건강과 well-being과 보건의료체계 사이에 행태와 사회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적 유대와 물질적 자원 등이 존재하고, 이러한 요인들을 보다 근원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범주의 사회적 결정요인들이 있음을 열거하고 있다. 최근 Booske 등은 미국의 건강결정요인의 변천사를 다루면서, 1950년대 까지는 환경위생적 요인이, 1970년대 까지는 의료기술의 영향이, 1990년대까지는 개인 행태의 중요성이 강조되다가, 1990년 이후 지금까지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보건학적 문제의 하나가 된 ‘비만의 집단발병(Epidemic of obesity)’도 미국 사회의 빈곤과 격차라는 사회적 건강결정요인이 초래한 사회적 질환이라 볼 수 있고, 그렇기에 이 비만문제의 해결 또한 생의학적 접근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2.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


현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개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중심’으로 기능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최근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2022년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사망의 약 80% 는 암, 순환기계 질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에 기인하며, 인구 고령화에 따라 이들 질병의 사회적, 경제적 부담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18년 대비해 2020년 우리나라 주요 만성질환으로 인한 진료비는 63조에서 71조로 12.7% 증가하였고, 65세 이상의 주요 만성질환 진료비는 10조에서 12조로 12% 증가하고 있다. 이들 만성질환으로 인한 질병부담과 의료비상승에 대한 종합관리와 예방 중심 체계로의 전면적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지속을 위해 너무나도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제동 장치를 잃어버리고,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이러한 고비용구조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efficiency)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불어 우리나라 보건의료 문제의 한편에는 건강수준과 의료혜택의 형평성(equity)이라는 문제가 있다. 사회 계층별로 사망수준이나 건강수준에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영국 등 선진외국에서는 일찍이 장기간의 추적조사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앙 암등록자료의 암 발생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연구에서, 의료보험료 수준에 따라 분류한 하위 20% 소득계층은 상위 20% 계층에 비해 암 발생률이 남자가 1.65배, 여자가 1.43배 높게 나타났고, 암 발병자 중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분율인 치명률(암 진단 후 3년 이내 사망할 확률)도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에 비해 남성 2.06배, 여성 1.49배 높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는 소득 하위계층의 국민이 암을 유발하는 사회물리적인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암 진단 시기가 늦어 같은 암이라도 예후가 나쁘고, 경제적 이유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함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지역 간 사망수준의 차이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21년 연령표준화 전체 사망률은 가장 낮은 서울에 비해 가장 높은 강원도가 약 25% 높게 관찰되고 있고, 심장질환 사망률의 경우에도 광역지자체 간 격차가 2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건강결과에서의 심각한 격차는 도시-농촌, 그리고 시군구별 비교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5~14세 아동청소년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은 상위 10개 시군구 지역은 모두 군 지역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집단 간 사망의 건강격차를 설명할 생물학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지역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건강위험요인과 그 결정요인, 그리고 사회적 자원과 의료자원이 지역별로 불평등하게 분포하는 데 따른 결과로 추정된다.



3. 건강과 질병의 사회 현상적 속성


건강과 질병문제를 생의학적 모델에서 나아가 사회의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임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기에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용직 근로자가 급성충수돌기염(맹장염)에 대한 치료가 지연되어 복막염으로 진행되어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면, 생의학적 모델에 따른 사망원인은 급성충수돌기염이 된다. 그런데 현대의학에서 급성충수돌기염에 대한 발생기전이나 치료기술은 완전하여 이 질환으로 사망한다는 것은 생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용직 근로자가 하루의 일당을 벌기 위해 일과시간 내내 심한 복통을 참다가 결국 이러한 건강결과가 초래되었다면 사회의학적 관점에서는 이 사람의 사망원인은 충수돌기염이 아니라, 이 사람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시대 지금과 같은 건강과 질병문제가 만성적으로 지속되고,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집단 간 격차가 커져가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생물학적 요인에 의했다기보다 특정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과 집단이 갖고 있는 사회 현상적 속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들어서 본격적으로 만성질환시대 전개됨에 따라 공중보건과 역학연구는 개개인의 형태와 관련된 질병 발생위험요인을 찾아내는 데 열중하게 되고(web of causation), 결과적으로 건강과 질병 예방을 위한 전략 또한 개인행태에 초점을 맞춘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빠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을 개인의 건강행태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러한 행태를 지속하는 개인을 탓하게 되고(blaming the victim), 보다 근원적으로 한 사회에서 그러한 행태를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실제 사회적 결정요인이 간과될 수 있다. 즉 한 사회 구성원들에게서 관찰되는 건강행태는 불건강의 주원인이라기보다 그러한 행태를 결정하는 사회적인 요인의 단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답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은 “왜 이 개인이 아픈가?”가 아니고, “왜 이 집단에서는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의 분포가 이럴까?” 그리고 “이러한 위험요인의 분포를 결정지우는 (사회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이 무엇일까?”가 되어야 한다.


즉 한 사회에 속해 있는 개개인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러한 위험행위에 노출되고, 질병에 이환되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개개인과 그들이 속한 사회와 집단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는 사회의학과 공중보건에서 인구집단에 대한 전망(population perspective)을 보다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4. 인구집단건강의 관점과 접근 전략 


인구집단에서의 건강결과와 이의 분포로 정의될 수 있는 인구집단건강(population health)에서는 많은 건강 결정요인이 집단 수준(group)에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집단 간 건강격차가 개인 간 건강차이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인구집단건강에서는 건강과 관련된 환경(environment)과 구조(system)의 영향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 자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인구집단은 개개인의 단순 합을 넘어서는 것이고, 집합적인 유기체(collective organism)로 볼 수 있고, 따라서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건강해지면 결과적으로 전체집단이 건강(health in the population)해 진다는 관점을 넘어서서, 그 집단 자체의 건강(health of the population)이 보다 중요하고, 이러한 건강한 사회집단이 개개인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caring society).


이런 인식하에서 인구집단이 그 자체로 관심의 단위가 된다면, 건강을 위한 개입 또한 그 인구집단 자체의 사회구조적 특성에 주목해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인식에 근거한 접근이야말로 건강과 질병 관리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의 기본 토대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건강위험요인연구의 가장 큰 성과의 하나로 거론되는 흡연의 건강피해에 대한 대응전략도 흡연자 대상의 금연 상담을 넘어 그 사회에서 담배가 생산되고, 광고되고, 배포되는 사회구조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집단 전체의 건강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인구집단기반 금연전략 마련이 가능하다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집합적이고, 맥락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개인수준이 아닌 인구집단 자체를 분석단위로 하는 연구기반이 마련되어야 하고, 인구집단은 이러한 의미에서 집단건강수준과 그 관련요인들의 집합, 그리고 이들의 상호관련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즉 지역, 연령군, 또는 계층별로 구분화된 소인구집단 간 건강수준을 비교, 관찰하게 되면, 집단 간 건강격차를 야기하는 (개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적 요인에 대한 파악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이러한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집단 전체에 대한 예방적 개입전략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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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