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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대학의 세 가지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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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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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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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부터 국가까지 생명체와 조직체의 목적이 생존과 번영에 있다면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지역대학들 역시 변화하는 생존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소멸 이유는 명확하다. 대학을 찾는 학생들이 매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한 대학들의 체질 전환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생만으로 살 수 없다면 획기적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혁신에 성공하면 번영의 길에 진입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소멸하는 진실의 시간이 된 것이다.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이를 극복할 비전과 실천 방안이 절실하다.


지역대학의 돌파구는 글로벌화, 융합화, 그리고 지역화라는 세 축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전략이지만 정작 그 본질을 명확히 하고 내용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첫째가 글로벌 전략이다. ‘명성’(prestige)은 대학의 모든 역량과 성취를 상징한다. 글로벌 대학이 된다는 것을 ‘세계적 명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대학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다. 수도 없는 대학들이 영욕(榮辱)과 명멸(明滅)을 거듭했지만 살아남아 명성을 발산하는 대학은 극소수이다. 세계적 명성은 모든 대학의 꿈이기에 그 꿈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한 번 명성을 얻으면 번영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대학들은 이를 포기하고 주저앉는다.


우리나라 대학의 글로벌화는 대학의 글로벌 기업화를 의미한다. 공장의 수출품은 물건이지만 대학의 수출품은 세계의 학생들이다. 세상의 인재를 받을 수 있으면 그게 글로벌 경쟁력이다. 사람을 잃으면 망하고 사람을 얻으면 흥한다. 대학의 눈을 세계로 돌리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성공한 이유는 세계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작은 국내 시장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제품은 만들었지만 최고의 사람은 나오지 못했다. 세계와의 연결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대학과 나라의 한계이다. 대학이 세계화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선진국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지역에서 세계적 대학이 나와야 나라도 미래가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대학에 대한 평가와 지원도 냉정하게 행해져야 한다. 


생존과 번영의 두 번째 열쇠는 융합이다. 이상적인 융합은 탁월성과 탁월성을 결합해 새로운 창조성을 발현하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과 배움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 쇠퇴하는 대학은 장벽을 궁리하지만 번영하는 대학은 연결과 융합의 길을 생각한다. ‘스코틀랜드 계몽시대’(Scottish Enlightenment)를 열었던 영국의 대학들은 유럽의 인재들을 끌어들여 세계 제국의 사상과 지식을 제공했다. 19세기 독일의 대학들은 유럽 지성의 요람으로 독일의 국가 통합을 이끌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과 기술 인재들의 용광로가 되었다. 21세기 중국의 대학들은 최고의 연구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세상을 주도하는 대학들은 탁월성의 융합으로 승부하고 ‘지식 원정대’를 불러들이고 내보낸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질이나 에너지는 융합하거나 분열하면서 나온다. 지식의 융합과 분열은 창조와 연결된다. 창조적 융합에서 밀리면 미래는 없다. 교수가 자기만의 연구실이라는 독방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한 융합은 힘들다. 대학의 위기가 가속화하지만 연구실과 학과의 경계는 여전히 견고하다.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지만 내가 먼저 나설 수는 없다는 ‘집합행동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구실의 벽을 허물고 지식의 융합으로 승부해야 지역대학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세 번째 전략은 지역화이다. 지역화는 대학과 지역의 동반성장을 의미한다. 대학의 성과를 지역에 환류하고, 지역과 미래를 함께하는 전략이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 지식, 매력을 세계와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지역과의 깊은 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까지 대학과 지역의 깊은 연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맞물린 기어가 아닌 헛도는 체인에 불과했다. 


대학이 사라지면 지역도 가라앉는다. 그 일차적 책임은 대학에 있다. 지역에 있지만, 지역에 관심이 없고, 지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역과 절실한 고민을 공유하고, 이를 타개할 돌파구를 제공하는 ‘로컬 널리지’(local knowledge) 생산에 소홀했기 때문에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지역과 연결되지 못한 대학에는 아무리 돈을 써도 소용없다. 지역대학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지역발전과 동반성장의 주체로 인재와 지식을 활용하는 구체적 대안을 대학이 주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글로벌, 융합, 지역화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전략의 실현을 위한 ‘집합적 실천'(collective action)에 있다. 길이 있어도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들이 위기를 알면서도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학 자신에 있다. 대학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이해 함수가 조직의 이해 함수와 다르면 어떤 대책도 실행되기 어렵다. 개인과 조직이 책임과 권한을 공유하고 이해 함수가 일치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 간에 책임-성과-보상의 단절을 보완해야 한다. 대학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가 여기에 있다. 대학의 변화를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도 필수적이다. 대학에 대한 공적 투자는 사회적 계약에 대한 신뢰가 담보되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준엄한 ‘사회적 계약'이라는 생각으로 행해져야 한다.


우리나라 지역대학에 미래가 있는가? 미래는 있지만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벌화, 융합화, 지역화는 생각하기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그만큼 남다른 결심과 꾸준한 투자가 중요하다. 수많은 대학들이 역사 속에서 흥망을 거듭했지만, 생존한 대학들의 이유는 명확하다. 지식의 생산을 주도하고 그 혜택을 세계, 공동체, 지역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의 소멸은 갑자기 닥친 쓰나미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오래전부터 가혹하게 진행되었던 변화의 일부였다.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의 대부분은 대학 자신에 있다.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방향과 목적이 명확한 실천을 통해 명성과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오늘 현재 우리나라 지역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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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한림대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