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복지모형과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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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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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형’ 복지모형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복지분야는 급격한 성장을 해 왔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 무상급식으로 촉발한 복지논쟁은 좀 더 성숙한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미래지향적인 복지모형 구축에 합의하지 못한 채 혼돈의 상태에 빠져 있다. 이는 ‘일자리가 복지’, ‘증세 없는 복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포용복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두터운 복지’ 등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복지의 목적과 모형은 과연 무엇인가? 그동안 이에 관한 진지한 철학적, 학문적 고민이 미흡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모형은 자유주의모형과 사민주의모형이 혼합되어 있는 ‘뒤죽박죽형’이며, 핵심 가치들 간의 갈등, 복지자원 배분의 비합리성 등과 같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복지 확대의 두 얼굴 : 보장 강화와 재정부담 증가
현대 복지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복지체계의 지속가능성이다. 서구사회는 1980년대 이후 인구고령화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복지재정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복지개혁을 끊임없이 추진해오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기도 한다. 최근 프랑스 마크롱정부에서 연금수급 연령의 상향 조정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연금개혁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이 이런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복지재정도 급증하고 있는데, 2023년 국가예산 639조 원 중 광의의 복지(보건·복지·고용 등)에 할당한 재정은 226조로서 전체예산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2022년 정부가 핵심 복지사업에 지출한 예산(국비, 지방비)은 기초생활보장 19.9조원, 기초연금 20.9조원, 아동·보육 9.4조원, 취약계층(장애인)지원 4.6조원으로서, 이 중 현금성 급여가 이들 지출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복지급여 형태 중 현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경직적인 복지지출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공적연금인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이미 적자상태이며, 2023년 약 5조원, 2030년 약 9.3조원의 재정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도 적자국면으로 들어서서 재정안정성의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국민연금도 제5차 재정계산 결과 오는 2054년 기금고갈을 예측하고 있다.
건강보험도 2017년 보장성 강화정책을 시행한 이후 급여비 지출이 급증하여 2022년 총급여비가 약 98조원에 달하고 있어 2017년 대비 약 35% 증가하였다. 특히, 인구고령화로 인한 노인 의료비 증가로 이들의 급여비가 총급여비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와 같이 복지체계가 성숙단계에 진입하면서 증가하는 재정 부담은 복지의 지속가능성과 제도의 안정적 운영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복지 개혁과 도덕적 해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급속한 인구고령화, 노동시장의 비활성화와 불안정, 청년 빈곤의 심화,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 등과 같은 신사회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현행 복지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며, 이 중에서도 인구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담 증가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과제이다.
최근 현 정부는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쟁점인 사항이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성 간의 충돌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개혁의 핵심내용인 연금급여의 지급시기와 수준(소득대체율) 조정, 보험료율 재산정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원만하게 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국민연금의 급여수준 결정에서 기초연금(65세 이상, 소득하위 70% 노인 대상 월 32.3만원 지급)의 급여액은 중요한 고려 요소인데, 지난 대선기간 양당 후보들이 기초연금의 월 40만원 인상을 약속했기 때문에 연금개혁안의 구조와 내용을 합의하는 데에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같이 연금개혁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기존 제도들 간의 부정합성, 이념 차이에 따른 가치 충돌 등과 같은 요인 이외에 또 다른 개혁의 저해요인은 바로 기성세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이다. 즉, 연기금의 재정안정성이 위협 받고 있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염려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양보할 움직임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향후 이러한 행태는 서구 사회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머지않은 미래에 심각한 세대 간 갈등을 야기할 우려를 낳게 한다.
공정으로서의 복지와 사회통합
현재 사회 각계각층에서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폭주하고 있다. 또한, 향후 진영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정치구도 하에서 정치권은 선거 승리를 위해 복지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현재의 안위를 위해 미래의 위기를 간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리 사회에 적합한 복지모형에 관한 조속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포퓰리즘적 복지의 억제, 복지의존성 감소, 과도한 국가주의적 개입 완화를 전제로 노동능력 없는 시민에 대한 생활보장, 저소득층에 대한 긍정적 차별 강화,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 등 복지체계의 내실화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
향후 고도화된 지식정보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시민들의 복지욕구를 과거 20세기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즉, 미래사회에 적합한 공정(fairness)으로서의 평등과 이에 기초한 복지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형평적인 분배 원리의 정착과 함께 성별, 연령별, 사회지위별 불평등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 복지체계를 구조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이 사회통합을 구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복지체계의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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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균(한림대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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