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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문학 교류'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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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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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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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인식해 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집단적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변동이 있기는 하나, 일본 내 31개 공항으로 연결되는 직항 노선을 통해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2024년에 일본을 찾은 한국인 수가 8817800명인데, 사상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2023(696만 명)에 이어 2년 연속 방일 외국인 1위를 석권(?)한 한국인은 일본의 인바운드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한국 내 유통·문화 소비시장에서 '예스 재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도 하다. 방한 일본인의 경우는 2023년에 약 231만 명. 2024년에 약 322만 명 수준이었다. 여하간 작년 한 해 양국을 오간 한국인과 일본인이 약 1203만 명에 달한다. 바야흐로 양국은 매달 백만 명이 오가는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인 것이다. 이처럼 한일의 지리적 위치는 말 그대로 일의대수이다. 다만 이와는 별도로 과거사 문제와 지정학적 역학 관계에 따라 정치·경제·안보 등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국가 레벨의 갈등이 양국 국민 개개인의 인식과 교류에 영향을 미치며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는 지난 6<동아일보-아사히신문 공동 여론조사>의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조사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포함해 과거사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80%'해결되지 않았다'라고 답한 반면 일본인은 46%'해결됐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가깝고도 먼'이라는 이 양가감정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1998년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그 해소를 위한 행동계획이 잘 제시되어 있듯, 국가 간 협력관계 강화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교류 및 문화교류의 증진이 발판이 될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문학 교류'에 주목해 한일 양국이 서로의 문학작품을 어떻게 수용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일 간 '문학 교류'의 미래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어떻게 일본문학을 수용해왔는가

 

일본문학 중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작품으로는 야노 류케이의 경국미담(1883~4)이라는 정치소설이 거론된다. 한성신보에 연재된 후 1908년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도쿠토미 로카의 불여귀와 히노 아시헤이의 보리와 병정정도의 극소수 작품만이 번역되었다. 이는 번역을 거치지 않은 일본의 문학과 지식, 일본어로 번역된 세계 문학과 교양이 일부 지식인에게 공유되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강력한 배일정책으로 인해 일본문학이 공적 영역에서 자취를 감춘다. 일본문학이 재등장하는 것은 1960년의 4월 혁명 이후이다. 둑이 터지듯, 고미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1960년에 번역되었고, 같은 해에 전후일본신인 수상작품선, 전후일본문학선집(2), 일본문학선집(7), 일본걸작단편선집(2), 아쿠타가와상수상작품선등이 발간되었다. 더불어 일본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나쓰메 소세키, 시가 나오야,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의 작품이 한국 독자에게 소개되었는데, 1960년대에 번역된 일본문학 작품이 467편에 달했다. 또한 김소운, 백철, 정비석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여 1966년에 발간된 일본대표작가 백인집(5)과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으로 대표되듯, 1960년대는 '일본문학 붐'이 거세게 일었던 시대라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박재희 역)으로 번역되어 스테디셀러가 되고,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과 미우라 아야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마쓰모토 세이초, 이노우에 야스시 등의 순문학과 대중소설이 번역된다. 1980년대는, 야마자키 도요코의 하얀거탑으로 대표되는 일본 대중문학 수용의 시기였고, 1990년대는 이른바 '하루키 신드롬'의 시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1989년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며 국내의 젊은 독자층을 매료시켰다. '노르웨이의 숲'이 아닌 '상실의 시대'라는 타이틀이 당시 운동권 세대의 상실감을 자극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01학번인 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둘러싼 모험등을 통해 일본문학을 '신선함'으로 접한 세대지만, 최근의 대학생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이미 고전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20239,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발간되자,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9월 한 달간 <WELCOME TO MURAKAMI HARUKI WORLD>라는 기획코너를 마련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홍보했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독자들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책 1위로 뽑혔는데, 45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참여한 이 투표에서 이 책은 30~40대 여성 독자들, 10~20대 남성 독자들의 높은 지지를 얻었고, 성별·연령별 모든 통계에서 TOP3에 선정될 정도로 많은 독자층에게 고루 지지를 얻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필두로 1990년대에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와 같은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이름을 알렸고,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세계가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동시대 작가의 작품들, 특히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들이 번역·소개되었고, 아쿠타가와상이나 나오키상과 같은 문학상 수상작들이 발 빠르게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같은 대중문학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고사기, 만엽집, 겐지 모노가타리와 같은 고전에서부터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등 일본근대문학 대표작가의 전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새롭게 번역되고 있다. 문학작품 외에 일본의 각종 전문서가 폭넓게 번역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일본의 사유가 어떤 외부보다도 가까운 위치에서 환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일본에서 수용된 한국문학과 '문학 교류'의 가능성

 

한편, 일본에서 한국문학이 수용된 첫 사례로는 나카라이 도스이가 오사카마이니치신문20회 연재(1882)계림정화 춘향전을 들 수 있다. 본격적인 번역물로는 호소이 하지메가 자신이 설립한 자유토구사에서 발간한 '통속조선문고' (1921~22)가 있는데, 이 시리즈는 1집부터 12집까지 목민심서, 장릉지/사씨남정기, 붕당사회의 검토/구운몽, 조선세시기/광한루기, 징비록/남훈태평가, 병자일기, 홍길동전, 팔역지/추풍감별곡, 심양일기/심청전, 아언각비/장화홍련전, 대아유기, 이조의 문신/각종 조선평론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소이는 이를 통해 3·1운동을 일으킨 조선인들의 풍속, 습관, 문물, 역사를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조선인이라는 동생들을 선도하고 교화할 수 있다는, 즉 문화통치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원활한 내선융화를 위한 자료로서 문학작품 번역이 이뤄졌고, 이것이 일본 내 한국문학 수용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1945년부터 1990년대까지는 허남기, 이은직, 김소운, 오임준, 강순, 안우식, 강상구, 정경모와 같은 재일 지식인들이 춘향전, 구운몽, 심청전, 흥부전등의 고전에서부터 조선시집, 현대남조선시선, 김지하시집, 신동엽시집등의 시, 대동강(한설야), 고향(이기영), 에미(윤흥길) 등의 소설을 번역·소개했다. 특히 작품집, 소설집 등 선집 형태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 들어 현대조선문학단편집 제1(1955), 한국명작단편집(1970), 한국현대문학선집(5, 1973~1976), 한국현대단편소설(1985), 한국의 현대문학(6, 1992) 등이 있다. 이를 통해 고전에서부터 동시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이 나름대로는 체계적으로 일본 독자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이때 재일 지식인들과 함께 역할을 한 것이 현대조선문학선(2, 1973~1974), 조선단편소설선(2, 1984), 한국단편소설선(1988) 등의 선집을 엮은 오무라 마스오, 다나카 아키라, 사에구사 도시카쓰, 가지무라 히데키, 조 쇼키치 등 '조선 문학의 회' 소속 일본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러한 한국문학에 대한 일본 내 수용은 김달수가 창간한 민주조선을 비롯해 계간삼천리, 계간 민도, 계간청구, 우리생활, 호르몬문화등과 같은 재일동포가 만든 일본어 잡지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는 김달수, 이진희, 박경식, 강재언, 김석범, 김시종 등 재일 지식인이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이른바 '조선 붐'이 분출한 시기로, 이진우 사건으로도 일컬어지는 고마쓰가와 사건, 김희로 사건, 히타치 취직차별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민청학련 사건, 문세광 사건 등 한국의 민주화운동, 재일동포, 남북통일(7·4 남북공동성명) 등을 둘러싸고 일본 언론들이 '한국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연대하는 흐름과 더불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1980~90년대 일어난 일본 사회의 '아시아 붐', '마이 붐'을 타고 한국문학이 수용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2002 한일 월드컵, <겨울연가><대장금>으로 시작되는 '한류 붐' 속에서 한국문학이 보다 폭넓게 수용되었다. 그러나 한국 내 일본문학 수용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일본 출판계에 한국문학 번역을 둘러싼 출판 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였다. 2015년에는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제1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독자와 출판계에 주목받았다. 참고로 이 소설은 한국문학번역원이 번역·출판 비용을 지원하여 발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아시아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국문학의 작품성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다. 201812, 82년생 김지영일본어판이 출판되었고, 발매 이틀 만에 아마존 재팬 아시아문학부문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2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 소설을 통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는 일본 독자층이 한층 더 확대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서점직원들이 뽑는 '서점대상'에서 손원평의 아몬드서른의 반격이 각각 2020년 제9회 번역소설부문, 2022년 제11회 번역소설부문,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2024년 제13회 번역소설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더불어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강 문학 붐''K-문학 붐'을 일으켰다. 일본의 한국문학 독자에게 한강을 비롯해 조남주, 손원평, 황보름, 김초엽, 박민규, 정이현, 황정은, 정세랑과 같은 작가들은 꽤나 익숙한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최근의 K-문학 붐은 카스테라의 예와 같이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과 더불어 일본 내에서 한국문학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CUON(김승복 대표)의 선구적인 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문학'과 더불어 '한국'이라는 뿌리와 줄기를 확장해 온 CUON2017년부터 번역 콩쿠르를 개최하여 수상자의 번역으로 작품을 출판하고, 또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출 판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일반 독자를 편집, 교정, 표지 제작 등의 출판과정에 관여하게 하며 독자 당사자를 드러나게 하는 힘을 축적해 왔다. 또 독서회와 작가와의 만남 등을 통해 전달된 독자의 목소리를 K-BOOK 독서 가이드 책체크에 담아 이를 서점에서 무료 배포함으로써 동시대 독자들의 목소리를 활자화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주목도 중요하다. 더불어 CUONK-BOOK진흥회, 판권 에이전트, 북카페 '책거리' 운영, 문학으로 여행하는 한국, 번역 페스티벌, 한일 출판인 교류, K-BOOK 페스티벌 등에 관여하며 일본 내에 한국문학을 발신하고 안내하는 안테나이자 '문학 교류'의 내비게이터 역할, 한일의 독서장(문화인-편집자-독자)에서 진정한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2010년대 일본 출판계와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수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현재 한국문학 번역을 이끌고 있는 사이토 마리코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양국의 작가와 출판인, 독자의 다층적 '문학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는 CUON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겠다. CUON은 박경리의 토지완역을 목표로 201611월에 제1권을 발간했고, 202410월 제20권을 발간하며 토지일본어판을 완결했다. 요시카와 나기, 시미즈 치사코, 요시하라 이쿠코의 공동번역으로 이뤄진 대업이 아닐 수 없다.

1월부터는 CUON이 운영하는 책거리 기획 '문학으로 여행하는 한국'(통영)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완독을 목표로 '토지독서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독서 모임의 주최자는 고등학교에서 사회 교과를 가르치다가 은퇴한 야마오카 미키로 씨이다. 필자는 유학 시절에 그와 문학과 역사를 통해 인연을 맺었는데, 그와 같은 양국의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뜻과 의지가 모이는 한일 '문학 교류'를 통해 양국의 심적 거리가 조금씩 좁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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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일(한림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