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깊이를 더듬어 파고 들어간다는 일 ― 한강의 몇몇 작품들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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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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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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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폭력, 상처, 애도와 같은 것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며 크고 작은 다양한 방식의 폭력을 타인에게 행하거나 타인으로부터 경험하고, 그 안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으면서 살아간다. 「채식주의자」에서 아내의 자해 시도와 마음속 상처를 외면하고자 하는 남편의 약한 마음이 그녀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되듯 말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그 사실을 깊이 있게 움켜쥐고 파고 들어가, 내 마음속의 폭력성과 상처까지 기어코 들여다보도록 하는 힘이 한강의 문장에는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차분히 자리에 앉아 숨을 깊게 몰아쉬고 그 문장이 주는 고통과 힘겨움을 감당할 만한 용기가 생긴 이후 읽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기 부처」는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 인간이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깊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화상의 흉터를 보여 준 그의 용기에 사로잡혀 남편과 결혼한 주인공은, 이내 그의 몸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처절히 자각하며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또 자신을 자학한다. 이 거리가 서로의 모든 것을, 불완전함과 약한 면까지도 모두 감싸안아 줄 것이라 믿었던 한때의 찬란한 희망을 산산이 부숴 버리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에게 같은 크기만큼의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복수심이 관계를 삼켜 버리고 만다. 남편의 내연녀에게서 온 헤어져 달라는 전화에, 남편에게 “당신 몸, 그 여자가 알아?”라고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묻는 주인공의 태도는 그 문장이 그에게 갖는 의미와 파괴력을 너무나 정확히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 상처를 조준하는 인간의 냉정함이 깃들여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특별히 냉소적이어서가 아니라, 친밀한 타인에게 상처받은 순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무의식적인 공격성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평생 자신의 약한 면을 타인에게 감추며 인내하고 살아온, “마음에 칼을 품고 살아”온 주인공의 어머니나, 자신의 어머니마저 자신의 옷을 갈아입힐 때 입술을 깨무는 장면을 보고 살아왔던 남편과 같이 위태로운 사람들에게는, 이 공격이 더욱더 치명적이다. 자신에게 상처입힌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종교적 가르침은, 따르기에는 너무 높고 멀리 있다. 진창 속에 허우적대는 주인공의 꿈과 그 안의 절박함은 그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셈이다.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는 폭력에 의해 상처받은 자, 그리고 그 상처의 깊이가 타자에게 얼마나 온전히 전이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는 광주의 오월을 이야기로, 증언으로, 사진으로 접했을 때 전해져 오는 섬뜩함과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그 깊이와 지속성으로 인해 우리를 더욱 숨죽이게 한다.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 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와 같은 단문체와 쉼표의 가쁜 호흡의 문장이 자아내는 고통 이외에도, 도청을 사수했던 이들, 그중 살아남은 이들이 반복해서 곱씹는 상처의 기억과 외부의 낙인들은 그 폭력이 한순간의 것이 아님을 직감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다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일하며 검열과에 불려가 일곱 대의 따귀를 맞는 은숙, 입에 담지 못할 고문을 당하고 나와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하고 원만한 부부생활을 유지하지 못한 채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야 하는 진수, 정신병원에 다니다 마침내 사람을 죽인 영재,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가까운 이와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일의 고독 속에 자신을 묻어 버린 임 선생. 이들은 모두 그해의 기억에 온 생애가 붙들려 버린, 그래서 그 상처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현재의 것임을 보여 주는 이들이다.
그리고 작가는 집요하게, 이 상처를 독자인 우리에게도 직시하고 마주하도록 한다. 중학생 동호의 시점으로 둘러보는 시신들이 모인 상무관의 정경이나, 이제는 모든 걸 잊고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 상처를 꺼내기 두려워하는 임 선생의 모습을 ‘당신’이라 지칭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독자는 그 ‘당신’이 되어, 동호가 바라보듯 일렁이는 양초와 흰 천이 덮인 시신들을 바라보게 되고, 밤늦은 시각까지 잠들지 못한 채 그날의 고문의 기억을 되새기는 임 선생의 마음이 되어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헤집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어린 동호의 죽음 이후 유족 어머니들과 마음을 나누며 시위를 하다가 발바닥에 유리가 박힌 동호 어머니처럼, 이들의 상처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인들에게로 전이되고, 또 끝내는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까지도 전이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마치 혼들이 어스름 무렵 부드럽게 자신의 그림자를 맞대 오듯 말이다. 그 과정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워 책을 덮어 버리고 싶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생생하고도 집요한 문장은 끝내 끝까지 이 문장들을 읽어 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 이 상처는 80년 5월에 있었던 그 하나의 특별한 사건과만 관련된 것도 아니다. 공부를 포기하고 공장에 다니며 언젠가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던 어린 정미, 정미와 함께 공장을 다니며 노조를 했다는 이유로 퇴직당하고 그 이후 미싱사로 일해야 했던 임 선생 등, 작가는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 구조가 개인의 꿈과 삶을 짓밟는 폭력 역시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잊혀진 채 시간 속으로 스러져 버린 약하고 여린 이들의 꿈과 목소리를 되살리는 일이 문학의 역할 중 하나라면, 『소년이 온다』는 그 역할을 어떤 식으로 할 수 있는지 또 한 번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에서 어스름 무렵 혼들이 서로 맞대며 고통과 상처를 나누는 장면이 전체 이야기로 스며들어 가 있다. 4·3의 비극으로 가족을 비참하게 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인선과, 학살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쓰고 난 뒤 자신의 일상을 보내기 힘들 정도로조차 그들에게 붙들린 경하가 그 중심에 있다. 또 이들을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희생자들의 증언, 만주 독립군 여성의 증언이 하나로 이어진다. 아무리 털어 내려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 희생자들의 비참한 죽음을 응시하는 일은 한 눈으로 꿈을 보고 한 눈으로 생시를 보는 위태로운 경계에 놓이는 일이기도 하다. 산을 넘으면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기어이 바다를 뒤돌아보는 일은, 거기서 구하고픈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하고픈 인선이 그랬고, 인선을 구하고픈 경하가 그랬듯이. 작가는 상처와 고통의 나눔이 단순히 말이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님을 이 소설에서 고통스럽게 펼쳐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그 고통과 작별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옹이가 새겨지기에는 많은 시간과 아픔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만큼 지극한 사랑의 깊이가 뒷받침된 이후에야 그것이 가능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극한 사랑 때문에, 상처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강의 여러 작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끝간 데 모르는 절망의 심연을 더듬어 파고 들어가는 인간의 집요함과 강인함, 그리고 그 과정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연약함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끝까지 외면하고 싶던 마음속의, 그리고 역사 속의 어둠을 마주하는 시간 이후, 끝내는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내리는 눈의 가벼움과 부드러움 속에서 죽은 이의 얼굴에서 녹지 않는 눈의 섬뜩함을 동시에 떠올리고, 그들이 느꼈던 전율을 일상 속에서 기억하며 꿈과 생시의 두 시야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되새겨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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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혜(인문콘텐츠융합전공/국어국문학전공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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